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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2023년 6월 6일 - 대전국립현충원

by 웅크린 바람 2024. 1. 30.

2023년 6월 6일, 자전거를 타고 대전국립현충원에 방문했다.

나와 특별히 연고가 있는 장소는 아니지만, 2021년 8월 카자흐스탄에 잠들어 계시던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대전국립현충원으로 모셔왔다는 이야기에 이전에도 한번 방문했었다.

 
현충원에 들어가기 전 간단하게 먹은 냉면. 특별히 맛있다까지는 아니지만 먹을만 했다.

 

국립대전현충원 입구에서.
 
<천마웅비상>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거룩한 넋을 원동력 삼아 조국을 영원히 번영으로 이끈다는 의미로 세워진 동상이라고 한다.

의미는 나쁘지 않지만, 국립대전현충원에 '조국의 번영과 영광' 이외에도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넋들이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안식을 맞이하기를 기원하는 내용의, 그런 의미를 담은 동상이나 구조물이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홍범도 장군님 묘소 찾아가는 길....

대전현충원 한 곳, 아니 묘소 한 구역 한 구역 모두에 수많은 분들이 잠들어 계신다.

과연 그분들이 하늘 저편에서 우리를 내려다보시면, 어떤 생각을 하시고 계실까?

모든 것이 무너졌던 대한민국을 다시끔 세상에 부끄럽지 않을 강대국으로 키워낸 것을 보고 뿌듯해하실까?

아니면 끝모를 증오와 편가르기, 혐오로 가득한 대한민국을 보고 안타까워하실까?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도착한 홍범도 장군님의 묘.

혹시라도 홍범도 장군님의 묘소를 찾아가고 싶다면 독립유공자 제3묘역으로 오면 된다.

묘역을 향해 올라오다 보면 의자와 탁자 등 간단하게 쉴 수 있는 장소가 있는데, 바로 옆에 홍범도 장군님의 묘소가 있다.

이미 한번 방문했지만, 군대 전역을 마치고 한번 더 방문하기로 다짐했던 만큼 전역신고를 묘소 앞에서 한번 더 했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충의와 위훈을 기리는 현충탑. 아직 유해를 찾지 못한 분들의 위패, 그리고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잠든 무명용사의 유해를 안치한 봉안당도 있다.

이곳에서 조촐하게나마 나라를 위해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감사, 그분들이 편안한 곳으로 떠나 행복과 평화가 함께하기를 바라는 위로,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전쟁이 없는 시대에 대한 기원을 함께 드리고 왔다.

 

 

돌아오면서 찍은 대전 월드컵경기장.

 

마치면서....

국립대전현충원 방문기를 상당히 늦게 쓰긴 했지만, 역으로 지금 방문기를 쓰면서 많은 것들을 느끼게 해준다.

이 글을 쓴 시점(2023년 9월 3일) 홍범도 장군의 소련 공산당 가입 경력을 빌미로

흉상을 철거하려는 육군사관학교, 정율성 역사공원 건립과 관련해 논란이 일고 있는 광주광역시.

단 한 달도 안 되는 기간 동안 연이여 불거저 나온, 독립운동가와 일제강점기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다만 정율성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 꺼내지 않도록 하겠다. 독립운동 경력은 그렇다 치더라도 한국전쟁과 관련해 남침에 적지 않게 협조한 인물로 보는 경향이 더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홍범도 장군의 소련 공산당 가입 경력을 빌미로 육군사관학교에서 흉상을 철거하려는 모습만큼은 도저히 참기 어려워 이 글을 쓰게 된다.

당시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민족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등의 진영이 있었던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독립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걸고 침략자와 싸웠다'는 점이다.

어떤 이들은 차가운 산과 대지에서 총을 들었고, 어떤 이는 몇 대를 풍족하게 살 재산을 모두 처분하고 만주로 떠나 독립군을 양성했으며, 어떤 이들은 깃발을 들고 일제의 총칼 앞에 '조선 독립 만세!'를 외쳤다.

 

 

물론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몸을 담았지만, 남북분단 이후 북한 정권의 수립과 남침에 중요한 역할을 한 김원봉과 최용건 같은 인물들도 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평가는 '아직' 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에서 잘 알려진 백범 김구 역시 자신과 사상이 다른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테러를 감행한 것은 거의 분명하고, 이런 행보에 대해서 비판받아 마땅하다.

마찬가지로 독립운동가들 중에 독립운동에 참여했다는 명(明)과 함께 북한 정권의 수립과 남침에 가담했다는 암(暗)이 공존하는 분들이 여럿 존재한다.

때문에 이들의 독립운동 경력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남북통일, 최소한 남북갈등이 어느 정도 해소된 뒤에 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그때가 되면 좀 더 다양한 입장과 시각에서, 그리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때의 기록과 이야기들을 통해 이들의 행적을 평가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홍범도 장군의 소련 공산당 가입 전력을 이유로 육군사관학교에서 흉상을 철거하려 함은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국군은 그 기원을 한국광복군에, 육군사관학교는 신흥무관학교의 후신으로서 이를 계승했음을 통해 정통성을 확립하고 있다.

그리고 이 두 조직 -한국광복군, 신흥무관학교-은 확실히 창군 이전의 조직이다. 하지만 '창군 이전의 역사다'면서 독립운동가의 흉상 대신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인물(누구인지는 굳이 말하지 않겠다)로 그 자리를 대신한다면 과연 그 정통성을 인정받았다고, 그 의지를 이어받았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