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리나 - 새들의 세계/작열세

세리나: 새들의 세계 - 1억 5천만년 기 - 키란 제도 (1) 코끼리핀치

웅크린 바람 2025. 6. 29. 22:21

Elefinches

코끼리핀치

 

키란 제도에 여명이 찾아오자 초원의 하루가 시작되고, 기이한 생물들이 활동하기 시작합니다. 거대한 초식동물이 긴 나뭇가지에서 달콤한 열매를 따 먹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주둥이에 달린 두 개의 긴 촉수를 이용합니다. 바로 뒤에는 작은 초식동물 두 마리가 지나가며 이들 역시 작은 촉수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기이한 코가 달린 새들은 코끼리핀치(Elefinch), 키란 제도 전역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대형 초식동물입니다.

 

 

키란 제도에는 어두운 숲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새들 못지않게 사바나에서 큰 무리를 지어 살아가는, 비행 능력을 상실한 다양한 종류의 대형 조류들이 있습니다. 많은 섬 고유 조류들처럼 이들은 포식자가 드문 환경에서 진화하며 날개를 잃었습니다.

지구의 에뮤나 타조, 바다 건너 아드구스처럼 이들은 대부분 초식성이고, 세리나의 조류 조상들처럼 지상에 둥지를 틀고 알을 품으며 난태생 조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새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들만의 고유한 특징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으며, 이는 포유류에서 태생(胎生)이 진화한 일에 비견될 정도로 특별한 적응의 결과물입니다.

 

대부분의 새들이 단단한 케라틴질 부리와 주둥이를 가진 것과 달리 코끼리핀치는 연조직으로 이루어진 코를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조류에서 이런 형태는 두 번 정도 진화했으며 세릴로프도 비슷한 주둥이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엘레핀치 고유의 형질은 바로 촉수처럼 움직이는 한 쌍의 부속지로, 놀랍게도 콧구멍이 길게 연장된 것입니다.

 

이 촉수 같은 기관은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는데, 먹이를 입으로 가져오는 것부터 몸단장, 사회적 신호, 심지어는 수중 스노클로 활용하기도 합니다. 이들의 코는 앞다리 이상으로 정교한 과 같습니다.

작고 빠르게 달리는 종들은 날개 대신 이 부속지를 양옆으로 펼쳐 균형을 잡으며, 인간의 두 배에 달하는 키로 자라는 대형종들은 원래라면 닿을 수 없는 높이의 나뭇가지를 잡아당겨 과일과 어린잎을 먹습니다.

 

 

물론 엘레핀치가 특유의 코 모양 부족지를 어떻게 활용하는지도 충분히 흥미롭지만, 더 흥미로운 점은 이들의 진화 경로입니다. 기초세 극초기에 살았던 카나리아들이 어떻게 를 가지고 엘레핀치가 되었을까요?

 

 

그 해답은 수백만년 전, 키란 제도의 생물들이 아직 본토와 독립적으로 진화하지 않았을 때입니다.


코끼리핀치의 역사

 

15천만 년 전, 수많은 품종과 색상의 애완 카나리아 100만 쌍이 세리나 극초기 초원에 방사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모든 것이 이전과는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카나리아들은 천 마리씩 묶여 전 세계에 퍼진 2천 곳의 지점에 방사되었고, 최소 한 그룹은 키란 제도에 방사되었습니다.

 

1억 5천만 년 전, 키란 제도를 포함한 세리나 전역에 도입된 애완 카나리아.

 

지구의 소형 조류들이 섬에 고립되었을 때처럼, 키란 제도의 카나리아들도 새로운 서식지의 자원을 활용하기 위해 빠르게 적응해 나갔습니다. 포식자가 부재한 환경에서 이들은 빠르게 날개가 퇴화한 대신 덩치가 커졌습니다.

 

100만년기

 

통통한 초식성 카나리아들이 등장했습니다. 당시 많은 조류들과 마찬가지로 이들도 포식자가 거의 없는 환경에서 수세대에 걸친 자연선택 결과 대부분의 열성 색상형질을 상실하고 자연적인 보호색을 띄게 되었습니다.

 

이들에게 비행 능력의 완전한 상실은 필연적이었고, 특히 이들의 고립된 서식지는 본토보다 훨씬 오랫동안 육상 포식자로부터 안전했습니다. 덕분에 극초기 비행 능력을 상실했던 이 새들은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200만년기

 

완전히 지상 생활에 적응한 메추라기 같은 조류가 진화했으며, 이들은 지상에서 동식물을 모두 먹는 잡식성이었습니다.

 

곧 이 원시 조상들로부터 다양한 계통이 분화되었다. 이들 중에는 대형 초식 조류도 있었고, 본토에서 비슷한 시기 진화했던 웜블러나 다른 초기 거대 조류들과 비슷한, 방어 수단이 거의 없는 종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이 엘레핀치의 조상은 아니었으며, 이들이 그런 생태적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수백만 년이 더 필요했다. 이 시점에서 엘레핀치의 조상들은 전혀 다른 진화 경로를 걷고 있었는데, 이들은 식물이 아닌 곤충을 주식으로 했습니다.

 

500만년기

 

날지 못하는 카나리아 계통 중 하나는 이제 덩치가 커지고 다리와 부리가 길어지면서 곤충을 먹는 데 특화되었다. 이들은 특히 대나무 덤불과 풀숲의 낙엽 사이를 뒤지며 부드러운 곤충들을 찾아 먹습니다.

 

그러나 당시 키란 제도에서는 많은 새들이 제한된 자원을 두고 경쟁하고 있었고, 이들은 경쟁을 피하기 위해 점차 대부분의 새들이 활동하지 않는 밤에 먹이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길고 예민한 촉각의 부리를 흙 속에 찔러넣어 숨어있는 지렁이나 곤추을 찾아낼 수 있게 된 반면 눈과 날개는 퇴화했습니다. 이들은 낮 동안 포식자를 피하고자 굴에 숨기 시작했고, 굴착 작업을 위해 발톱이 커졌습니다.

 

1,500만년기

 

이들은 곤충을 먹는 야행성 조류로, 시력은 나쁘지만 매우 예민한 후각과 길고 민감한 부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생태적 지위가 자리를 잡자 시각에 의존하지 않고 먹이를 찾는 데 적응한 형질이 더욱 발전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일부 개체들은 눈이 더욱 작아진 대신 부리가 부드러운 고무 같은 조직으로 덮이며 훨씬 민감해졌고, 끝부분만 먹잇감을 붙잡기 위해 단단한 구조를 유지했습니다. 튼튼한 다리와 크고 굽어진 발톱은 넓은 굴을 파기에 적합해졌습니다. 이런 굴은 새끼를 키우거나 새로운 포식자로부터 보호하는 데 적합했을 뿐 아니라 온화해진 작열세 기후에도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부리는 땅을 파기 쉽게 넓고 납작해져 삽처럼 변했으며, 얼굴에는 수염 같은 강모가 자라나 굴을 파고 먹이를 찾을 때 촉각을 보다 예민하게 해 주었습니다.

 

2,500만년기

 

오소리와 비슷한 이 새는 굴을 파고 땅 속의 먹이를 찾아내는 데 적합하게 진화했습니다. 눈은 거의 퇴화해 명암과 움직임을 감지하는 정도이지만, 대신 콧구멍이 부리 끝으로 이동하면서 후각이 극도로 발달했습니다. 이들은 이제 완전한 야행성 동물입니다.

 

이 새들은 고립된 군도에서 다른 생물이 차지하지 않은 생태지위를 차지한 결과 오랜 세월 동안 모습이 거의 변하지 않았습니다. 일부는 스너팔로(Snuffalo)라는 대형 초식동물로 진화해 거대한 부리로 느리게 걷기도 했지만, 진정한 승자는 또 다른 계통이었습니다. 이들은 부리 끝에 부리 신경과 직접 연결된 고무처럼 부드러운 조직으로 이루어진 섬모를 진화시켰으며, 덕분에 땅속에서 벌레나 곤충이 만들어내는 미세한 진동까지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이 새들은 짧은 다리와 긴 몸통으로 좁은 땅굴을 누비며 먹이를 사냥할 수 있었으며, 여전히 시력은 나빴지만 어슴푸레한 움직임을 감지할 정도는 유지했습니다.

 

이렇게 연조직 섬모를 가진 지하성 새들은 수천만 년 동안 다른 군도 지배종들의 눈에 .띄지 않게 살아남았지만, 이들의 세계에 닥친 커다란 비극이 이들에게 빛을 비춰주었습니다.

 

7,500만년기

 

두더지와 매우 비슷한 형태로 진화한 이 새는 지상으로 나오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날개는 흔적조차 남지 않았고, 국수처럼 생긴 코 돌기를 이용해 땅속의 진동을 감지하면서 복잡한 지하 터널에서 지렁이를 사냥하지만, 야간에는 가끔 지상으로 올라와 먹이를 찾기도 합니다.

 

세리나 8,000만년기에 키란 군도의 역사를 완전히 바꿔놓는 대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직경 180미터에 달하는 소행성이 군도에서 가장 큰 섬에 떨어진 것입니다. 이 소행성 충돌은 세계적 재앙은 아니었지만 운 나쁘게도 바다에 떨어지거나 다 타버리기 전에 지상에 떨어진 것입니다. 이 소행성이 떨어졌을 때 발생한 충격파로 섬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숲과 지상동물들이 큰 피해를 입었는데, 키란 제도 고유의 조류종 90% 이상과 대형동물군이 멸종하고 지하에 숨어 있던 소수만이 살아남았습니다.

 

이제 지하에 서식하던 새들이 군도의 지배자가 되었습니다. 소행성 충돌에서 살아남았던 다른 경쟁자들도 숲이 사라지면서 먹이와 서식지를 잃고 멸종했기 때문입니다. 본래 지하에서 생활하던 이 야행성 조류들은 지상으로 되돌아왔고, 수 세대 만에 눈을 다시 발달시켰지만 원추세포는 되돌리진 못해 주행성임에도 여전히 색맹이었습니다.

 

숲이 되살아나고 먼 섬에서 다른 새들이 유입되었지만, 일부 전() 굴파기새들은 과거 지하생활에 특화된 신체 구조를 새로운 방식으로 활용했습니다. 이들의 코 돌기는 대부분 소실되었지만 부리는 여전히 고무처럼 유연한 조직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상악골에는 근육이 발달해 부리 전체를 움직이면서 땅을 뒤져 먹이를 찾을 수 있었으며, 무척추동물뿐 아니라 덩이줄기 식물, 씨앗, 낙과까지 먹는 잡식동물로 진화했습니다. 시간이 지나 이들은 나뭇가지 위의 먹이도 따먹기 시작했고, 부리 바깥쪽으로 입술처럼 돌출된 상악조직을 위로 뻗어올려 나뭇가지의 열매나 잎을 잡을 수 있게 되었씁니다. 부리는 이제 넓은 판처럼 변형되어 먹이를 통째로 삼키는 방향으로 진화했습니다.

 

이렇게 유연한 코를 가진 대형 육상조류, 코끼리핀치(Elefinch)는 소행성 충돌로부터 1,000만 년이 흐른 세리나 9,000만년기에 처음 등장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최초의 코끼리핀치를 정의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1억년기

 

가장 원시적인 코끼리핀치 중 하나로, 오소리 크기의 동물로 지상에서 생활하며 주로 낮에 먹이를 찾습니다. 발톱은 여전히 크지만 무딘 발굽 모양으로 변했으며 길고 유연한 코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들은 색을 구분하지는 못하지만 개체간 의사소통을 위해 뚜렷한 흑백 무늬가 생겼습니다. 눈은 더 커진 반면 얼굴의 수염 같은 촉수는 퇴화한 상태로, 과일, 견과류, 지렁이, 새알 등 땅 위나 낮은 관목에서 찾을 수 있는 다양한 먹이를 섭취합니다.

 

이때부터 코끼리핀치는 매우 다양하게 분화해 키란 제도의 대표적인 대형 초식동물이 되었지만 여전히 많은 종이 기회주의적 잡식동물입니다. 한 계통은 굴파기에 적합했던 발톱을 발굽처럼 변형시켜 사바나 개활지에서 먹이를 찾고 같이 키란 제도에 유입된 stiltskin의 후손인 거대한 날지 못하는 왜가리를 닮은 포식자들을 피해 도망치는 데 적응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코의 추가적인 진화로, 나무 위에 있는 먹이를 따기 위해 주둥이가 더 길고 자유롭게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콧구멍은 여전히 주둥이 끝에 있으며 이는 굴을 파고 지내던 조상의 형질을 물려받은 것입니다. 이들의 주둥이 내부는 이미 두 개의 별개 통로로 나뉘어 있었기에 끝부분의 콧구멍도 자연스럽게 분리되어 결국 두 개의 독립적이고 유연한 코줄기(Trunk)를 갖춘 형태가 탄생했습니다. 이 코줄기는 먹이나 사물을 잡는 데 쓰였을 뿐 아니라 넓은 표면적을 통해 코끼리핀치에게 뛰어난 후각을 제공했습니다. 또한 속이 빈 구조는 소리를 증폭시키는 데 용이해 상악골부터 머리 뒤쪽까지 이어지는 속이 빈 볏(Crest)을 발달시킴으로서 멀리까지 울리는 울음소리를 낼 수 있게 진화한 종들도 많이 탄생했습니다.

 

 

이제 코끼리핀치의 부리는 대부분 부드럽고 근육화된 조직으로 덮여 있으며, 유일하게 각질층으로 덮여 있는 부리 끝부분은 식물을 절단하는 데 쓰입니다.

부리 가장자리 안쪽에는 이빨과 같은 형태의 토미아(Tomia)’라는 케라틴 구조물이 있는데, 이 구조물은 지구의 수조류(Waterfowl)에게도 존재하며 세릴로프의 진정한 선조라 할 수 있습니다.

토미아는 풀과 잎을 잘라내는 데는 유용했지만 조류의 두개골 특성상 아래턱을 앞뒤로 움직여 음식을 씹을 수는 없었기에 통째로 먹이를 삼켜야 했습니다. 일부 코끼리핀치는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두개골과 결합된 턱관절부를 이용해 상악골을 앞쪽으로 미끄러트리는 방식으로 먹이를 씹을 수 있는 메커니즘을 개발했습니다(모든 새는 어느 정도의 두개골 운동-Cranial kinesis-를 보이는데, 특히 앵무새에게서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덕분에 코끼리핀치는 먹이를 잘게 으깨 삼킴으로서 원시적인 비반추위의 소화 능력을 보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반면 세릴로프는 근육화된 설치(舌齒)와 입천장을 통해 전혀 다른 방식의 저작운동을 하며, 볼이 있어서 훨씬 효율적으로 씹을 수 있습니다. 코끼리핀치는 뺨이 없어 세릴로프와 달리 저작운동 중 음식이 흘러나올 수 있지만, 그래도 통째로 먹이를 삼키는 것보다는 훨씬 높은 소화 효율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1억 5,000만년기

 

유연한 코줄기(Trunk)와 소리를 증폭시키는 속이 빈 볏을 지닌 초식성 코끼리핀치 두 종입니다. 왼쪽 종은 큰 덩치에 식물의 잎과 새싹, 열매를 주식(Browser)으로 하며, 오른쪽 종은 날렵한 체형에 풀을 주식(Grazer)으로 합니다. 풀을 주식으로 하는 종은 보다 원시적인 형태로 코끼리핀치의 진화적 중간 단계를 보여주는 예시로 작용합니다.

 

이들 역시 조상종처럼 색을 식별하지 못해 회갈색을 띠지만, 머리 위에 뚜렷한 흑백 무늬를 가지고 있어 의사소통과 과시에 사용합니다.

 

출처:

https://sites.google.com/site/worldofserina/the-thermocene

-75/elefinches

 

Serina: A Natural History of the World of Birds - Elefinches

Elefinches

sites.goog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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